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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고 쓰는 일본말

곤지둑 2016. 4. 17. 19:43

아흔다섯 번째 삼일절 아침, 동네를 걷다가 '○○공작소'라는 가게 앞에서 그만 걸음을 멈췄다. 간판에 쓰인 이런 말들 때문에.

 

'샷시, 조립식 판넬, 샷터 제작, 고시, 방충망, 쟈바라.'

 

이 간판, 가만 보면 우리말보다 일본말이 더 많은 셈이다. 우선 '쟈바라(じゃばら·蛇腹)'. 이 말은 아주 그냥 일본말이다. 아코디언을 연주할 때, 한손으로 건반을 누르고 다른 손으로는 주름상자를 밀거나 당기는데, 이때 밀고 당기는 주름상자가 바로 일본말로 쟈바라다. 옛날식 사진기에도 비슷한 게 붙어 있는데, 한자 표기로 알 수 있듯이, 뱀의 배에 있는 주름처럼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쟈바라'가 우리나라에 와서는 한쪽으로 밀면 접히는 방범 창살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것. 셔터 대신 설치하는 이 창살은 출입문뿐 아니라 창문에서도 볼 수 있다.

'고시'도 알고 보면 그냥 그대로 일본말이다. 일본말로 '코우시(こうし·格子)''격자'. 또는 '격자문, 격자창, 격자무늬'의 줄임말. 이게 우리나라에서는 도둑을 막기 위해 창문에 다는 알루미늄 방범 창살로 뜻이 분화했다. 전혀 그렇게 생기지 않아서 일본말인 줄도 모르고 쓰는 말인 것.

'샷시'도 외래어라기보다는 일본말에 가깝다. 우리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새시(sash)', 일본말로는 '삿슈(サッシュ)라서 한눈에도 어느 쪽에 가까운지 알 수 있을 정도.

'판넬'도 우리 외래어 '패널(panel)'보다는 일본말 '파네루(パネル)'에 가까워 보인다. '샷터' 역시 우리말 '셔터(shutter)'보다는 일본말 '샷타(シャッタ-)'와 더 닮았다.

그러니, 간판에 쓰인 말 가운데 '방충망''조립식, 제작' 빼고는 모두 일본말이거나 일본말 찌꺼기인 셈이다.

한데, 바로 옆 고물상 간판에는 또 이런 말이 보인다.

 

'신주 사고 팝니다.'

신츄(しんちゅう·眞鍮), '놋쇠'를 가리키는 일본말이다


[출처: 부산일보 2014-03-04 (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