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njiduk Gazebo
버선 - 오이씨가 된 발 본문
버선은 족의(足衣)라고도 하며 한자어로는 ‘말(襪)’이라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신고 있는 ‘양말(洋襪)’은 말 그대로 ‘서양 버선’이라는 뜻이다.
"버선본을 장독에 붙이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잡귀를 쫓고 장맛이 변하지 않게 위함이었다. 버선본은 흰색인데 이 흰색은 낮에는 햇빛을 반사한다. 그런데 날파리나 기어다니는 해충은 반사빛을 싫어한다."
[인용 출처] 김종태, 『옛 것에 대한 그리움』, 서울:휘닉스(2010년), pp.69-71
"버선 모양은 부정(不淨)한 곳에 출입을 자주하는 남자들이 신성한 여인네 공간에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이여 경고의 표시이기도 하며 벽사(辟邪)의 의미로 벌레를 발로 죽이는 모습의 발을 본떠서 해충의 접근을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 곧 액(厄)막이 역할을 버선에 의지한 것이다."
[인용 출처] 고성광, 『자연의 그릇 옹기』, 토담미디어(2012년), p. 40
[사진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문화유산채널(http://www.k-heritage.tv/) 공공누리
버선이나 옷 등을 만들 때 쓰기 위해 본보기로 만든 실물 크기의 물건을 '본(本)'이라고 한다.
어른이 되고 나면 발의 크기가 변하지 않으므로 한번 버선의 본'본(本)'을 떠 두면 그 다음부터는 따로 치수를 재지 않고도 버선을 지을 수 있었다. 그래서 며느리는 가족들의 ‘버선본’을 각각 떠 두었다.
예부터 ‘버선본’은 버선을 만드는 일반적인 틀에서 벗어나 주술적인 의미로도 쓰였다. 특히 정월 대보름에는 삼재(三災)가 든 사람의 ‘버선본’을 대나무에 끼워 지붕의 용마루에 꽂은 후 동쪽을 향해 일곱 번 절을 하면 액이 달아난다고 믿었다.
동짓날에는 동지헌말(冬至獻襪)이라 하여 며느리가 시부모와 집안 어른들에게 새 버선을 지어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 새 버선을 신고 이날부터 길어지는 해그림자를 밝으면서 오래 사시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사진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또 버선을 신는 사람의 복(福)을 빌어주는 축원(祝願)의 글을 버선본에 적어두기도 하였다.
[계유(癸酉) 윤오월(閏五月) 념오일(念五日) 호시(好時)에 을츅(乙丑生) 보션(本) 환지(換紙)여스니 이 본(本)의 맛긔 긔워 신으시고 내외(內外)분 슈향년(白壽享年)의 다다숀(多子多孫)이 계계챵셩(繼繼昌盛)여 슬하(膝下) 각각(各各)분 영화(榮華) 가득실지라 두웃겁도다]
[사진출처] 문화유산채널(http://www.k-heritage.tv/) 공공누리
‘갑인생 복본, 슈명장슈, 부여셕슝, 자손창셩.’
‘갑인생 복본’이란 태어난 해인 ‘갑인년’과 버선본의 또 다른 말인 ‘복본’이란 말을 붙여 적은 것이다. ‘슈명장수’란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뜻이다. ‘부여셕슝’은 중국의 석숭이라는 사람처럼 부자가 되라는 뜻이며 ‘자손창셩’은 아이를 많이 낳아 화목하라는 뜻이다.
[사진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버선본집’은 버선본을 넣어 두던 보자기다. 각 식구마다 버선본을 보관하여 버선을 만들 때마다 간편하게 꺼내어 사용하였다.
[사진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버선은 여성의 구속을 뜻하기도 했다. 중국의 전족처럼 심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속담에 ‘발 크면 도둑놈’이라고 하고 날의 딸이나 며느리에게 ‘발이 솥뚜껑만하다’면 큰 욕이 되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작은 버선을 신겨 발의 발육을 막기도 했다. 남도 지방에서는 ‘버선 지르신는 년은 며느리 삼지 마라’라는 속담이 있는데 버선을 신을 때 회목에 발이 잘 들어가지 않으므로 뒤꿈치를 끼지 않고 짓눌러 신기도 하는데 이런 것을 금기시한 것이다.
‘매화타령’에서(어저깨 밤에도 나가 자고 / 그저깨 밤에는 구경가고 / 무신 낯으로 백릉버선에 볼받아 달라느냐 / 좋구나 매화로다)라는 구절에서 보듯이 헤어진 버선 바닥을 깁는 것을 버선볼 받는다고 했고 여인들은 호롱불 밑 일과였다.
버선은 사랑의 묘약으로도 쓰였다. 상사병을 앓는 사람에게 그 상대의 버선 뒤꿈치를 잘라 불에 태워 술에 타먹는 풍속이 있었다.
좁은 버선의 볼에 넓적한 발을 끼우느라 안간힘을 써야 했고 발이 아파 걸음도 못 옮긴 그 시대 여자들의 인고를 통해, 직선적 발산이 금기였던 유교적 생활 양식을 엿보게도 한다.
이같이 옥죄어 날렵해진 버선발에 외씨같다는 비유를 흔히들 해 온 것 같으나 찰름거리는 치맛자락 사이로 보일락말락 드러나는 순백의 버선발의 형태는 마치 물굽이에서 노니는 한쌍의 원앙처럼 생동감이 넘쳐 보인다.
발목과 앞부리의 두 곡선이 기와의 추녀 끝처럼 기막히게 마주쳐 살짝 위로 솟아오른 버선코의 그 섬세한 형태 – 그것은 멋없이 불쑥 튀어 나온 엄지 발가락과는 상관없이 디자인된 추상의 선을 그려내고 있다.
버선의 아름다움은 겉모양으로 수눅을 따라 내려오던 곡선이 버선코에서 하늘을 향해 사뿐히 올라가는데 있다. 속으로는 볼목이나 회목의 꼭 조이는 절재미가 있다. 물론 하얀 색깔과 갸름한 모양도 아름답다. 버선의 곡선은 기와집의 추녀허리에서 보이는 조로의 곡선을 닮았다. 하늘로 날아가지만 가파르지 않은 기와집의 추녀허리, 어떤 방정식으로도 그려낼 수 없는 기하학의 곡선을 우리 여인들은 두 발에 담고 살았다.
한 마디로 말해 한국의 버선은 발의 미매시스가 아니라는 데 그 아름다움이 있다.
버선, 그것은 인체의 약점을 역전시키는 한국 디자인 감각의 원형이다.
춘향이는 오이씨 같은 작은 버선발로 사뿐히 걸어나올 때 그 미의 극치를 보이게 된다.
예전에는 여름에도 버선에 솜을 두어 도톰하게 했고 조붓하고 갸름한 버선은 모든 여인의 선망인 외씨버선이 되었다. 스란치맛단 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는 외씨(오이씨) 같은 버선의 날렵하고 우아한 자태는 동양의 미학이었다.
버선의 아름다움은 겉모양으로 수눅을 따라 내려오던 곡선이 버선코에서 하늘을 향해 사뿐히 올라가는데 있다. 속으로는 볼목이나 회목의 꼭 조이는 절재미가 있다. 물론 하얀 색깔과 갸름한 모양도 아름답다.
버선은 신기가 어렵다. 회목과 볼목이 꼭 끼이기 때문에 발냄새를 없애기 위함도 있지만 얇은 비단이나 창호지를 발에 감고 버선을 신었다. 그래야만 잘 들어갔다. 벗을 때도 여간 힘들지 않아 혼자 벗다가 둘이 용을 쓰면서 벗겼고 그러다 버선이 쑥 빠지면서 두 사람이 다 뒤로 발랑 넘어지는 구경거리도 있었다. 많은 억압을 참고 견디어 온 옛 여인의 대표적인 증거이면서 그 속에 지혜의 아름다움이 있다.
벗어 놓은 양말을 보면 마치 뱀이 허물을 벗어 놓은 것같이 징그럽게 보이지만 버선은 벗어두어도 그 형태가 무너지지 않는다. 발목과 앞부리의 두 곡선이 기와의 추녀 끝처럼 기막히게 마주쳐 살짝 위로 솟아오른 버선코의 그 섬세한 형태 – 그것은 멋없이 불쑥 튀어 나온 엄지 발가락과는 상관없이 디자인된 추상의 선을 그려내고 있다. 뒤축과 뒤꿈치의 비율이나 회목과 버선목의 길이나 둘레도 모두가 다 발의 일체공학에서 일탈된 형태를 하고 있다.
[참고문헌]
● 이어령, 『우리문화박물지』, 서울: 디자인하우스(2007년), pp.111-113
● 김종태, 『옛 것에 대한 그리움』, 서울:휘닉스(2010년), pp.69-71
작은 소망 / 황금찬
나
무지개로 뜨리라.
그대
꽃버선으로
밟고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