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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백자모란문환주병(靑華白瓷牡丹文镮酒甁). 본문
청화백자모란문환주병(靑華白瓷牡丹文镮酒甁).
이름은 그럴 듯하게 붙였으나 사실 조선의 청화백자가 아니라 일명 왜사기(倭沙器)이다.
우리보다 앞서 서양의 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일본은 1876년 이후 큐슈[九州] 지방의 산업화된 공장에서 자기들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였고,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7년에 일본의 향토 기업이었던 '일본경질도기'가 분공장(分工場)으로 부산 영도구에 '조선경질도기'를 건설하였다.
이처럼 점점 산업화된 일본의 자기공장들이 조선에 생겨나면서 만들어진 왜사기(倭沙器)는 본격적으로 조선 사회에 침투하기 시작하였고 값싼 가격의 왜사기와의 경쟁을 견디지 못한 조선 백자는 점차 조선 사회에서 밀려나게 되면서 조선 백자의 전통은 단절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도자기 업체인 '행남자기'는 1942년 순수 민족 자본으로 설립된 최초의 도자기 공장이다.)
사진은 일본 공장에서 만들어져 수입된 왜사기인지, 아니면 우리나라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어찌되었건 일본의 왜사기의 영향을 받아 근대에 제작된 것이다.
일본 인터넷 사이트에서 "牡丹文徳利", "染付牡丹蝶文徳利" 등으로 검색하면 사진과 동일한 형태와 문양의 주병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
제작연대 또한 일제강점기 시절인지 아니면 50년대에서 1960년대 사이에 제작된 것인지는 도자기에 대해 안목이 부족한 나로서는 정확히 단정하기 어렵다.
주병의 목부분은 몸통에 비해 짧으며 높은 굽은 몸통에서 접촉면에 수직으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비스듬하게 깍았다. 그리고 구연부에 가락지(镮)를 끼워 놓은 것처럼 목부분보다 두툼하게 만들어, 주병의 짧은 목부분을 잡았을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실용성을 고려하여 제작하였다. 주병의 전면 가득히 거친 붓질로 활짝 핀 모란(牡丹)과 봉우리를 그렸고 뒷면에도 단순한 문양이 그려져 있다.
그렇다면 뒷면에 그려진 단순한 문양은 과연 화공이 무엇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가?
일본 에도시대((江戶時代, 1600년~1868년) 후기(後期)에 제작된 고리마리염부목단덕리(古伊万里染付牡丹徳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