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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이야기(#2/3) - 증류식 소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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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이야기(#2/3) - 증류식 소주

곤지둑 2016. 10. 11. 21:05

요즘은 소주가 마치 국민주처럼 되어 있지만 우리 민족이 원래부터 소주를 먹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원래 청주(혹은 약주)와 막걸리(혹은 탁주)를 주로 마셨다. 귀족은 청주를 마시고 일반 백성들은 막걸리를 마셨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소주는 본래 아라비아인들에 의해 개발된 것으로 우리나라에는 고려말이나 원나라때 들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원나라가 일본정벌을 위한 전초기지가 있었던 제주, 안동, 개성에서 소주가 많이 빚어짐에 따라 제주소주, 안동소주, 개성소주가 유명해졌다.

우리 고유의 증류식소주는 찹쌀이나 멥쌀 등의 곡류에 누룩을 넣고 발효시켜 청주와 탁주를 제조한 다음 재래식 증류기인 소줏고리로 증류한 술이다. 희석식 소주에 비교할 때 첨가물(인공 감미료등)이 들어 있지 않아 은은한 곡물향이 훌륭하지만 가격은 당연 비싸다.

소줏고리는 소주를 고아 내는 도구로 요즈음의 증류기구이다. 다른 말로는 고리라고도 하며, 제주도에서는 소주고수리(고소리)라고 부른다.

허리가 잘록해 눈사람같이 생긴 그릇의 위·아래·가운데가 모두 뚫려 있으며허리 위에 긴 코 같은 대롱이 달려 있다

<사진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옛날에는 먹고 살기에도 빠듯할 지경인데 귀하디 귀한 쌀로 빚는 탓에 특히 귀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냥 쌀로 빚는 것도 아니고 쌀로 빚은 밑술을 다시 증류하여 만들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얻어지는 양은 더욱 적다. 조선시대에는 식량난을 우려해 소주 빚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가 빈번히 시행될 정도였다. 양반들조차도 작은 잔에 조금씩 따라 약을 음용하듯 마셨다. 소주잔의 크기가 작은 이유와 약주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하였다. 

그럼 시중에 팔고 있는 탁주(막걸리)를 밑술로 하여 소줏고리로 증류하면, 전통적인 증류식 소주가 가지는 맛이 날까?

<사진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경남 고성 '가마랑 전시' 소줏고리>

대개 오지로 만들지만 간혹 구리나 놋쇠로 만든 것도 있다. 구리나 놋쇠 제품은 위아래가 따로따로 만들어져 있으나, 오지제품은 한데 붙여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