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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 똥항아리

곤지둑 2016. 2. 2. 10:11

뒷간 / 용 혜 원 


달빛이 쏟아지는 엄동 설한에 

초저녁도 아니고 한밤중이면 

꼭 뒷간에 가고 싶었다 


혼자 가기엔 너무나 무섭고 싫어 

형, 누나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나도 무섭다" 며 

같이 가주지 않았다 


잠자리에 누우신 엄마를 부르며 

칭얼거리면 촛자루 하나에 

불을 켜 손에 꼭 쥐어주며 

앞서 나오셨다 


뒷간에 웅쿠리고 앉아 있으면 

몽당 빗자루 하나 놓여 있어 

수많은 무서운 이야기들이 스쳐 지나가고 

구멍 뚫린 곳에선 

엉덩이가 시리도록 찬바람이 불어왔다 


촛불이 흔들리고 

무서움증이 등골에 바짝 다가올 때면 

"엄마"를 부르는 외마디에 

추위에 떨면서도 엄마는 

"여기 있다!" 고 말하셨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지금도 가끔씩 엄마의 그 음성이 

귓가를 맴돌며 들려온다


화장실 인분 항아리. 재래식 화장실에 묻어 인분을 저장하는 전남 순천지역 항아리

경남 고성군 가마랑?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결코 아름답거나 향기롭지 못했던 것들도 현실이 탈색되면 향수의 대상이 된다.

큰 항아리를 묻어 놓고 그 위에 두개의 나무 판만 덩그러니 걸쳐 놓은 채, 흙담을 치고 거적으로 간신히 입구를 가려 놓았던 게 고작이었던 측간.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시골 농가의 화장실은 대부분 이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측간이 사라지면서 청결함과 품위는 얻었지만 사람과 자연과의 생태 순환고리는 차단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