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njiduk Gazebo
즐거운 편지 / 황동규 본문
Ⅰ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Ⅱ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그래서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에 ‘반드시’까지 들어가서 상당히 강조된 것인데, 이건 그때까지 우리나라의 연애시에 없던 겁니다. 실존주의 상황 속에서도 두 사람이 일생 동안 서로 사랑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랑은 늘 새롭게 만들어가야 되는 것이지 한 번 주어진 사랑의 본질 때문에 일생을 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겁니다. 이게 이 시의 초점입니다. 첫 마디는 역설이고 반어법입니다만, 넓은 의미에서 「가시리」의 ‘가시난닷 도셔 오쇼셔’에서 멀지 않습니다. 그러나 둘째 마디에 가서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라는 깨달음이 나타납니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눈이 내립니다. 자신의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인정하고, 사랑도 언제나 끝날 수 있다는 조건 속에서 우리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것이 이 시의 초점이 되고 내가 받은 전통을 그대 속에서 내가 발견한 겁니다. 이 시의 가치가 있다면 오랜 전통에 처음으로 변화를 준 것입니다.
‘즐거운 편지’를 쓸 무렵은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와서 몇 년 되지 않은 삭막한 때였고 프랑스에서 건너온 사르트르 유의 실존주의가 유행하던 때였습니다. 나는 그때 고등학교 학생으로서 실존주의를 잘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실존(實存)이 본질(本質)에 선행한다’는 명제를 내용도 모르고 암기할 정도였지요. 하지만 실존주의적인 분위기만은 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결정된 사랑은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도 늘 새롭게 만들어가야 되는 것이고, 늘 선택을 해야 되는 것이고, 그 생각이 이 연애시 속에 들어간 겁니다.
- 출처 『나의 문학 이야기』, 황동규,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