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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공산성

곤지둑 2016. 7. 11. 16:03


공산성(公山城)은 백제 웅진시대(475~538)에 도읍지인 고마나루(熊津: 지금의 공주)를 방어하기 위해 축성된 산성이다.

금강이 흐르는 해발 110m능선과 계곡을 따라 흙으로 쌓은 포곡형 산성(包谷形 山城: 계곡과 산정을 함께 두른 산성)으로, 자연에 젖어 이름모를 새소리와 숲내음을 맡으며 거닐수 있도록 둘레길이 형성되어 있다.

화려한 백제문화를 꽃피우던 왕도(王都)였고, 조선시대 충청감영이 있어 호서지역 행정과 문화의 중심지였던 공주.

그러나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인조가 파천해 머물기도 했고, 19세기 말 혼돈의 시대에는 가슴 쓰라린 우리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곳 역시 공주였다.

동학농민전쟁때는 보국안민과 척양척왜의 기치를 내걸고 한양으로 향하던 동학농민군이 공주 우금티 전투에서 일본군과 관군의 신식 총 앞에서 전멸당해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고 한다. 우금티 옆 두리봉 산제단 부근 고랑으로 벌건 피가 흘러내려왔다고 하며, 밀려난 농민군들이 쫓기다 물에 빠져 죽은 용못은 그 후로 송장배미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경찰과 헌병대는 좌익전력이 있거나 인민군에 동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교도소 재소자 등을 재판 없이 집단총살했다. 당시 정확한 희생자수는 파악할 수 없지만 형무소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 등의 민간인이 500명이 희생됐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대전일보 2016-06-08 12면기사 인용]


공산성은 산성을 따라 탁트인 공주 시가지의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으며, 서늘한 강바람을 맞으며 금강을 가장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굽이굽이 이어지는 금강 끝자락에 노을이 걸쳐질 무렵, 금강을 붉게 물들일 황홀한 낙조 풍경을 상상해본다.

단풍지는 가을날, 석양에 물든 공산성을 보기위해 내 다시 찾아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