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njiduk Gazebo
[청송] 청송백자전수장 본문
청송주왕산국립공원야영장 캠핑(2016.08.23~26) 중 3일차(2016.08.25) 청송백자전수장 방문
산세가 험하기로 유명한 청송의 재를 몇 구비나 넘고 넘어 다다른 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전형적 산촌 마을.
주왕산의 남쪽, 해발 717.5m의 무포산 자락에 자리잡은 청송군 부동면 신점리 법수골. ‘구름도 쉬어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칠 정도로 천혜의 자연을 품은 오지 중의 오지다.
법수 백자마을은 강원도 양구, 함경도 회령, 황해도 해주 자기와 더불어 ‘조선 4대 민요(民窯)’로 꼽히는 청송백자의 본향(本鄕)이다. 민요란 조선시대 민간에서 가마로 구운 도자기를 이르는 것으로, 왕실이나 양반가의 그것이 아닌 탓에 서민의 삶과 닮았다.
특히 청송백자는 16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500여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의 도자기로, 경상도 지역에서는 문경사기와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한 서민생활도자기로 꼽히고 있다. 청송백자는 흙을 사용하는 다른 지역의 백자와는 달리 ‘도석’(陶石)이라는 돌을 빻아서 빚는 독특한 제작방식으로 인해 눈처럼 흰 설백색(雪白色)을 띠며 그릇의 두께가 얇고 가벼운 특징이 있다.
청송백자는 청송을 비롯한 경북 동·북부지역 민가에서 두루 사용됐다. 일제강점기 당시 지방 대부분의 사기들이 일본 ‘왜사기’의 물량 공세에 고전을 면치 못할 때도 청송백자는 일본으로 수출됐다고 하니 가히 그 명성을 알 듯하다.
하지만 명성 높던 청송백자의 운명은 화마와 포탄이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조선을 넘어 일본에까지 이름을 떨친 청송백자였지만, 한국전쟁은 설백(雪白)의 색깔을 가진 이 백자에게 크나큰 시련을 안겨줬다. 전쟁의 화마 속에 도자기를 굽던 가마는 대부분 소실됐고 청송백자를 빚던 사기장들은 뿔뿔히 흩어졌다.
원료와 인력 공급에 차질이 생긴 데다 엎친 데 덥친 격으로 대량 생산된 스테인리스 식기가 시장을 점령하면서 청송백자는 설자리를 점차 잃어갔다. 결국 1958년 신점리 법수골 청송백자를 굽던 가마의 불씨는 완전히 사그라졌다. 조선 민초의 삶에 녹아들며 5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온 청송백자의 마지막이었다.
[인용출처] 대구신문: 청송백자의 本鄕…잊혀진 반세기 영광을 되살리다
법수골 청송백자 전수장으로 들어가는 들머리 양쪽으로 우뚝 선 2개의 장승이 외지인들을 경계하는 섬뜩한 모습인가 했더니, 자세히 살펴보니 그 표정이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을 반기는 듯 정겹고 익살스럽다.
마을입구의 당나무. 제(祭)를 올리는 공간 주위에는 돌담을 쌓고 금줄을 둘러놓았다.
그로부터 58년이 흐른 2016년 가을의 초입에 찾은 청송 법수 백자마을은 500년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전통공방의 모습을 거짓말처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사연일까. 청송백자를 그냥 보내버리기엔 과거의 영광이 너무나 크다고 판단한 청송군이 백자 복원에 나서 2009년 법수골 일대에 공방과 전통가마, 주막 등을 그대로 재현시킨 청송백자 전수장을 조성한 것.
청송백자 전수관 주변은 백자의 주원료인 도석이 나는 법수광산이 병풍처럼 휘감고 있었다. 밀짚모자를 깊숙히 둘러쓴 형태를 한 움집형의 원형구조로 이뤄진 전통공방(사기움)은 원료의 분쇄에서 성형과 유약작업까지의 모든 공정이 한곳에서 진행되는 곳으로 청송지역만의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사기움 옆의 커다란 가마도 눈길을 끈다. 청송지역에서는 굴과 같다고 해서 ‘사기굴’(전통가마)이라고 한다. 5개 칸으로 이뤄진 굴은 앞 칸에서부터 점차 커져 마지막 칸은 맨 앞 칸의 2~3배가량이 된다. 가마의 경사도는 40도 정도로 다른 지역 가마와 달리 매우 가파르다. 이는 청송백자의 원료인 도석의 내화력이 높아 짧은 시간에 가마 내부 온도를 높여도 기물이 파손되지 않는 장점을 이용한 청송 가마만의 특징이다.
사기굴의 모양은 이러한 돌과 불의 특성을 이용해 초벌구이만으로 사기를 완성시킨다. 그것은 연료와 노동력을 절약하고 짧은 시간에 많은 사기를 생산하기 위해 오랜 시간 최적의 형태를 찾아 실험을 거듭한 노력의 결과다.
광산의 채굴 흔적. 청송백자는 흙을 사용하는 다른 지역의 백자와는 달리 ‘도석’(陶石)이라는 돌을 빻아서 빚는 독특한 제작방식으로 인해 눈처럼 흰 설백색(雪白色)을 띠며 그릇의 두께가 얇고 가벼운 특징이 있다.
청송 법수 백자마을.
민초 삶 간직한 조선 4대 民窯
‘도석’ 빻아 빚는 독특한 방식
가볍고 얇은 기벽으로 이름나
잇단 전쟁에 가마 대부분 소실
청송군, 법수골에 전수장 재현
공방·주막 등 옛 모습 그대로
[인용출처] 대구신문: 청송백자의 本鄕…잊혀진 반세기 영광을 되살리다(http://www.idaegu.co.kr/news.php?code=se&mode=view&num=207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