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njiduk Gazebo
[의성] 금성산 고분군 본문
의성의 동남쪽 금성산 아래 옛 무덤들이 무리지어 누워있다. 금성면의 대리리, 탑리리, 학미리 일대다. 크고 작은 고분들은 370기가 넘는다. 그중 대리리에는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60여기의 중대형 고분이 분포되어 있다. 조문국(召文國) 후예들이 남긴 고분군이다.
조문국. 아스라한 이름이다. 많은 기록은 없다. 대동지지(大東地志)와 읍지(邑誌)는 ‘현재의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서 남쪽으로 25리 떨어진 금성면 일대’에 조문국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벌휴이사금이 조문국을 정벌하였다’는 내용이 짧지만 강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로써 조문국은 삼한 시대 의성지역에 번성했던 국가였고 벌휴이사금 때인 185년 신라에 복속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봉분들은 침착하고 고요하게 솟아 있다. 대부분 원형의 봉토분이다. 봉토를 이루고 있는 저 엄청난 양의 흙은 이 지역의 흙색과는 다른 순수한 점토라 한다. 다른 지역에서 운반해 왔으리라 판단되는데, 그에 따르는 막대한 노동력은 통치자의 정치적 영향력을 짐작하게 한다. 영속화된 권력이, 영구한 힘이, 봉분으로 쌓여 있다.
사적지 초입에는 봉분 모양의 안내소와 이층의 팔각 전망대가 있다. 봉분들 사이 키 낮은 울타리로 구획된 산책로는 ‘고분 거님길’이라는 다정한 이름을 가졌다.
고분들에는 대부분 묘석이 없다. 1호, 2호라는 숫자가 묘석을 대신한다. 단 하나의 무덤만이 묘석을 가지고 있다. 1호 고분, 조문국의 경덕왕릉이다. 능 앞은 ‘召文國景德王陵(조문국경덕왕릉)’이라고 쓰인 비석과 문인석, 장명등, 상석으로 단장되어 있다.
이곳을 지나며 쓴 미수 허목 선생의 시가 있다.
‘번화했던 그 모습 다시 볼 수 없고/ 거친 풀 들꽃만이 향기롭구나/ 다닥다닥한 옛 무덤엔/ 민둥민둥 백양 한 그루 없도다/ 둔덕 위에 밭가는 농부는/ 아직도 경덕왕을 이야기하고 있네.’
고분의 발굴조사는 1960년부터였다. 그리고 금동관, 금동관장식품, 금동제귀걸이 등의 화려한 장신구와 함께 철제 무기류, 마구류 등이 출토되었다. 초기 국가 형성기의 대표적인 정치 집단이 이 땅에 존재했다는 증거였다. 조문국은 지금, ‘잃어버린 고대왕국’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어떤 기록들보다도 먼저 금성(金城)이라는 땅의 이름이 오랜 정체를 소리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