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njiduk Gazebo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 본문
조선에 백자의 시대가 도래한 것은 성리학이 정착되고 유교의 덕목들이 생활 속에 뿌리내리면서 강조된 청렴결백 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사대부가 지향하는 청렴과 순백함을 반영하여 조선의 의생활에 흰옷을 입는 풍습이 유행한 것처럼 16세기 후반에는 양질의 고령토로 만든 흰색 자기, 백자가 전국적으로 제작되어 서민들의 삶에 가깝게 다가왔다. 백자의 백색(白色)도 자세히 보면 그 빛깔이 서로 약간씩 다르다.
“조선조 초기의 설백(雪白)혹은 회백(灰白)에서 중기의 부드러운 젖빛이 감도는 유백(乳白), 그리고 후기의 푸르고 맑은 담청백자(淡清白磁)로 변해가는모습을 볼 수 있다.”[’1983.09.08. 매일경제 9면 생활/문화 기사’에서 인용]
또 백자(白磁)는 크게 아무 문양도 그리지 않은 순(純)백자, 코발트를 사용해 문양이 파랗게 나타나는 청화(靑畵)백자, 산화구리 안료를 사용하여 문양이 붉게 나타나는 동화(銅畵)백자 또는 진사(辰砂)백자, 산화철 안료를 사용하여 문양이 흑갈색 계통으로 나타나는 철화(鐵畵)백자 등으로 나눈다. 이밖에도 조선시대 자기에는 백자뿐만 아니라 드물게 15세기말~16세기의 전라도 고창 용산리 가마 등지에서 제작된 흑자(黑瓷)도 발견되고, 19세기로 가면 소형 문방구에서 주로 보이는 청채(靑彩)나 동채(銅彩) 기법도 보이며 석간주(石間硃) 항아리라 불리는 그릇이 탄생한다.
백자청화매죽문 항아리, 국보 제219호
흑유자편병(黑釉磁扁甁), 15세기후반, 선문대학교박물관
한편 일찍부터 상업화에 눈을 뜬 일본이 17세기 중반부터 화려하고 섬세한 채색의 이로에(色繪)자기를 유럽으로 수출하면서 축척된 막대한 부롤 바탕으로 근대화의 길을 걷는 반면, 조선은 성리학의 청렴결백 사상에 따라 청나라의 화려한 채색자기를 오랑캐 문화로 여겨 수용을 거부하였다. 결국 조선은 강제개항 이전까지 백자가 가지는 소박하고 간결한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중요시하는 등 조선 백자의 독자적인 세계를 이루는 데 치중하였다.
[참고 문헌]
● 윤용이(2013).「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 파주:돌베게출판사
● 정용모(1989).「국보, vol 8 백자·분청사기」. 서울:한국브리태니커회사
백자 청화매조죽문 유개항아리(白磁 靑畵梅鳥竹文 有蓋壺), 국보 제170호, 국립중앙박물관
백자 병(白磁 甁), 보물 제1054호, 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상감모란문 병(白磁 象嵌牡丹紋 甁), 보물 제807호, 호림박물관
백자 상감연화당초문 대접(白磁 象嵌蓮花唐草文 大楪), 국보 제175호, 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소상팔경 무늬 팔각 연적(白磁 靑畵瀟湘八景文 八角硯適), 대한민국 보물 제 1329호, 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철화끈무늬 병(白磁 鐵畵垂紐文 甁), 보물 제1060호, 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철화매죽문 항아리(白磁 鐵畵梅竹文 壺), 국보 제166호, 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 (白磁 鐵畵葡萄文 壺), 국보 제107호,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白磁 靑畵洞庭秋月文 壺
백자 청화칠보난초문 병(白磁 靑畵七寶蘭草文 甁), 국보 제1058호, 국립중앙박물관
백자진사 송응문 각병(白磁辰砂 松鷹文角 甁), 18세기, 높이 27.2cm, 일본 개인
백자진사 호작문 항아리(白磁辰砂 虎鵲文 壺), 18세기, 높이 28.9cm, 일본 민예관
백자 달항아리 (국보 제309호), 삼성박물관 리움
백자 달항아리 (국보 제310호), 국립고궁박물관
백자 달항아리 (보물 제1437호), 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철화운룡문 항아리(白磁 鐵畵雲龍文 立壺), 국보 제645호,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白磁 鐵畵葡萄猿文 壺), 국보 제93호, 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청화‘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白磁 靑畵‘弘治二年’銘 松竹文 立壺), 국보 제176호, 동국대학교박물관
백자 청화매죽문 유개항아리, 국보 제222호, 호암박물관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白磁 靑畵鐵彩銅彩草蟲文 甁), 국보 제294호, 간송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