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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Poem

붉은 우체통에 얽힌 그리움 / (宵火)고은영

곤지둑 2016. 1. 19. 18:12




붉은 우체통에 얽힌 그리움 / (宵火)고은영 


어느 길 모퉁이 이젠 폐기물처럼 

그리움의 물살 저편으로... 

자꾸만 세상 밖으로 숨는 우체통 

사람들은 별반 무심한 눈길 

나는 우체통에 눈길이 간다 

자꾸만 눈길이 간다 


사랑을 헐값에 팔지 않던 시대 

가난에 이력이 붙고 

수천 수만 날 배가 고파도 

자전거 페달을 밟는 우체부만 보면 

가슴이 뛰던 설렘 

하늘은 맑아 아득히 곱고 

그때 세상은 이렇게 각박한 

땟물에 절어있지 않았어 


부르지 않아도 달려가면 

애틋한 소망은 풀잎처럼 풋풋했고 

빨간 우체통에 피어 오르던 

향기 가득 밴 그리움의 사연들 

항상 정점의 꽃을 피우던 

얼마나 가난한 순수의 떨림이었나 

아름다운 세상이었나 


나는 유독 길가에 방치된 

우체통에 눈길이 간다 

한 통의 편지를 위해 

여러 날 기다리며 목메던 

그 시간을 접고 우체통은 

자꾸만 세상 밖으로 달아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