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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 유안진 & 성에꽃 / 문정희 본문

Art/Poem

서리꽃 / 유안진 & 성에꽃 / 문정희

곤지둑 2016. 2. 2. 15:51


손발이 시린 날은

일기를 쓴다


무릎까지 시려오면

편지를 쓴다

부치지 못할 기인 사연을


작은 이 가슴마저 시려드는 밤이면

임자없는 한 줄의 시를 찾아 나서노니

사람아 사람아

등만 뵈는 사람아

유월에도 녹지 않는

이 마음 어쩔래


육모 서리꽃

내 이름을 어쩔래











성에꽃 /  문정희 

 

추위가 칼날처럼 다가든 새벽

무심히 커튼을 젖히다 보면

유리창에 피어난, 아니 이런 황홀한 꿈을 보았나.

세상과 나 사이에 밤새 누가

이런 투명한 꽃을 피워 놓으셨을까.

들녘의 꽃들조차 제 빛깔을 감추고

씨앗 속에 깊이 숨죽이고 있을 때

이내 스러지는 니르바나의 꽃을

저 얇고 날카로운 유리창에 누가 새겨 놓았을까.

허긴 사람도 그렇지.

가장 가혹한 고통의 밤이 끝난 자리에

가장 눈부시고 부드러운 꿈이 일어서지.

새하얀 신부 앞에 붉고 푸른 색깔들 입 다물듯이

들녘의 꽃들 모두 제 향기를

씨앗 속에 깊이 감추고 있을 때

어둠이 스며드는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누가 저토록 슬픈 향기를 새기셨을까.

한 방울 물로 스러지는

불가해한 비애의 꽃송이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