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njiduk Gazebo
[구례] 화엄사 영전 혜가단비도(慧可斷臂圖) 벽화 본문
어느 해, 동짓달 초아흐렛날 밤새 큰 눈이 내렸다. 신광은 달마 대사가 면벽하고 있는 굴 밖에 서서 꿈쩍도 않고 밤을 지새웠다. 새벽이 되자 눈이 무릎이 넘도록 쌓였다.
“네가 눈 속에서 그토록 오래 서 있으니, 무엇을 구하고자 함이냐?”
“바라건대 스님께서 감로의 문을 여시어 어리석은 중생을 제도해주소서.”
“부처님의 위없는 도는 오랜 겁 동안을 부지런히 정진하며 행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하고 참기 어려운 일을 능히 참아야 얻을 수 있다. 그러하거늘 너는 아주 작은 공덕과 하잘것없는 지혜와 경솔하고 교만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서 참다운 법을 얻고자 하는가? 모두 헛수고일 뿐이니라.”
달마 대사의 이 얘기를 듣던 신광은 홀연히 칼을 뽑아 자신의 왼쪽 팔을 잘랐다. 그러자 때 아닌 파초가 피어나 잘린 팔을 고이 받치는 것이었다. 그의 발심(發心)이 열렬함을 본 달마 대사는 혜가(慧可, 487~593)라는 법명을 주었다.
혜가는 보리달마를 6년 동안 받들었으며 [능가경(楞伽經)]과 전법의 증표로 스승이 제자에게 전하는 가사인 신의(信衣)를 받았으며 중국 선종의 2대 조사가 되었다.
[참고문헌 : 고연희 외(2013).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서울: 태학사]
“그래, 무엇을 알고자 하는가?”
“마음이 심히 편치 않습니다.”
“편치 않다는 그 마음을 어디 가져와보라.”
“찾아보니 없습니다.”
“됐다. 그대 마음은 편안해졌다.”
이 안심(安心) 문답을 계기로 혜가는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달마 대사의 이 얘기를 듣던 신광은 홀연히 칼을 뽑아 자신의 왼쪽 팔을 잘랐다. 그러자 때 아닌 파초가 피어나 잘린 팔을 고이 받치는 것이었다.
달마와 혜가의 만남. 그것은 중국문명과 인도문명이라는 전혀 낯선 세계의 결합을 뜻한다. 두사람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중국선의 傳燈은 시작된다. 구법을 위해 찾아온 혜가에게 달마선사는 마음을 내놓아 보라고 요구함으 로써 잘못 대상화된 마음이 한낱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제자 스스로 발견하 게끔 도와주어 제자의 직관이 온전히 살아나 자신의 참마음을 보게해준다.
[인용출처]불교신문 1997.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