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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Poem

코고무신 / 황영진

곤지둑 2016. 7. 16. 10:43

[배인석_나는 거짓말하는 사람이 아니다_강주룡의 고무신_가변 설치_2009]

[사진출처: 국가보훈처 대표 블로그, http://mpva.tistory.com/108]


어매는 없고 코고무신만 남아 있네.

한 쪽만 닳아 구멍이 보이는

작은 코고무신 한 켤레.

다리 절던 우리 어매 이걸 신고 살았지.

 

밥 지을 때도 신었고

밭 매러 갈 때도 신었지.

고추를 딸 때도 신었고

마늘을 심을 때도 신었지.

산나물 뜯으러 갈 때는 새끼로 묶어 신고

담배를 엮을 때는 잠시 벗어 두기도 했지.

한 쪽이 닳으면 바꿔 신었지.

 

맨발로 맨살로 세상에 나와

한 쪽만 늦게 닳았던 코고무신 우리 어매

절뚝절뚝 평생을 걸어도

양쪽을 똑같이 닳게 하였지.

마지막 한 켤레,

남은 한 쪽 마저 닳구지 못하고

병들어 어매는 죽고 말았지.

 

어매는 저 세상에서도 절뚝거리며 살까.

한 쪽이 덜 닳은 코고무신을 내려다 보며

삼밭골 묵밭을 안타까이 바라볼까.

 

처마 밑 구석에,

한 쪽이 덜 닳은 코고무신만 남아 있고

코고무신 주인인 어매는 이제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