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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경상도

[영덕] 인량마을 재령이씨 종택

곤지둑 2016. 9. 12. 22:42

안동-영양-영덕-경주 여행 2일차(2016.09.05)

경북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인량마을.

촉촉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인량마을(나라골)을 방문하였다.


대로(大路)에서 마을로 들어서는 도로 양 옆에 펼쳐진 너른 평야를 보면서 이곳에 8대 성씨의 12종가(宗家)가 정착한 이유를 나름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곳 인량리(仁良里)는 영해에서 서쪽으로 십리 되는 곳에 사면이 산으로 쌓여있고 남쪽에 내가 가로 놓여 있는 산자수명(山紫水明)한 큰 동리로 영남의 명지(名地)로 이름이 높다. 마을의 역사는 선사(先史)시대부터 오늘에 까지 이어지고 있다.

옛날 지명은 인량화(仍良火)라 하다가 뒷산 형국이 학이 나래를 펼친 것과 같다하여 비개동(飛盖洞), 나래골, 익동(翼洞)이라 하였으며 광해(光海) 2(1610)에 인량으로 개칭되었다. 일설, 國洞(나라골)이라 불려오는데 이는 나래 골에서 나온 말인것 같다.

인량마을 한가운데 재령 이씨 종택인 갈암종택(지방기념물 84)과 우계종택(문화재자료 307) 이 있고, 우계종택 뒤로 들녘을 내려다보는 산기슭 아래 중요민속자료 168호로 지정된 충효당이 자리하고 있다.


충효당은 재령이씨(載寧李氏영해 입향조(入鄕祖이해가 조선 성종 때 건립한 가옥이다충효당이라 편액된 사랑채는 임진왜란 이후에 건립되었으며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 규모의 팔작 기와집이다정자와 같은 구성을 보이는 사랑채는 후학들을 양성하던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뒷편 대나무 숲에는 사당이 마련되어 있다.

이 가옥은 이황의 성리학을 계승 발전시켜 영남 성리학을 중흥시킨 갈암 이현일 선생의 출생지이기도 하다둥근 뒷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충효당은 자연의 품에 안겨 있는 듯하고사랑채(충효당대청마루에서 마을을 보면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 마을을 비롯한 인량 들판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충효당 뒤편인량마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한 사당은 양지바른 남향에 자리하고 있어 조상을 모시는 사당의 위치에 깊은 생각이 담겨진 배치 모습을 취하고 있다.


충효당 아랫쪽에 자리잡은 우계종택은 조선 선조 때 재령이씨(載寧李氏영해 입향조(入鄕祖이애의 손자인 의령 현감 이함(李涵)의 차남 우계 이시형(愚溪 李時亨)의 살림집으로 선조 39(1606건립된 후 현재까지 400년 가까이 우계파종가(愚溪派宗家)로 보존되고 있다.

종택은 정침과 별채로 이루어져 있는데 별채는 외부손님을 접대하던 건물이다.

정면 5측면 4칸의 자형 건물로사랑공간이 발달하지 않은 모습의 조선중기적 모습을 가진 양반가옥이다오른쪽 사랑채는 매천당이라 하는 당호만 걸려 있을 뿐 다른 종택에 비해서 소박한 규모이며 건립당시에는 대문채 및 행랑채가 있었다 한다.

우계종택은 분가한 저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집이다인량마을 뒷쪽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재령이씨 고택인 충효당 사랑채를 조선 선조때 새로 지으면서 아마도 그 자재(資材)들을 이용하여 차남이 분가한 집을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우계 이시형은 큰 벼슬을 한 것도 아닌데 분파가 만들어진 것이 특이한 점이다.


우계종택 아래쪽에 자리잡은 갈암종택은 조선 숙종(肅宗때 문신이자퇴계(退溪이황(李滉)의 학통을 계승한 영남학파의 거두인 성리학자 갈암(葛庵이현일(李玄逸, 1627~1704)의 종택이다갈암 이현일은 재령이씨 영양 두들마을 입향조인 석계 이시명의 3남이다원래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에 있던 것을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1992년 갈암 태실이 있던 현 위치로 이전한 것이다갈암종택은 갈암의 8대손 이수악(李壽岳)과 9대손 이회발(李晦發)이 항일투쟁의 거점으로 활용했던 곳으로역사성이 있는 종택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