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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Poem

거미줄

곤지둑 2016. 9. 14. 10:40

거미는

자신의 거미줄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2016.09.06. 칠보산자연휴양림 층층나무실에서 - 


거미 이면우-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오다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 이면우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창비시선 211)


익숙한 풍경이고 누구나 여러번 관찰한 적이 있어 따분하게 느낄 만한 사건입니다. 숲속이 아니라 홍대앞 같은 도심을 걷다가도 거미줄을 만나는 것은, 거미와 그의 투망질에 포획된 먹잇감을 발견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입니다. 그러한 사건을 다뤘으니 얼마나 쉬운 시입니까. 읽는이가 소화하지 못할 대목이나 어려운 시어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한 시어로 벽돌을 쌓고, 그렇게 평범한 사건으로 집을 완성한, 참 쉬운 시, 바로 이런 시가 가장 쓰기 어려운 시입니다. 그렇습니다. 따분하고 평범한 사건에서 시를 긷는 자, 식상한 일상에서 서늘한 삶의 이면을, 아픈 존재의 의미를 길어올리는 자가 시인입니다.

 

범상한 소재와 시어로만 완성되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범상치 않은 작품이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곧 소화되어 사라질 작은 삶이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군요. 함께 흔들리는 거미, 자신의 때를 엿보는 거미가 있군요. 범상하나 범상치 않게 아프도록 시린표현이고 풍경입니다.

2연은 과거의 나이를 끌어와 시작하는군요. 좀더 젊은 나이라면, 예전 나이로 돌아간다면,이라는 전제 뒤에 흔히 붙는 것은 ‘~할걸’, ‘절대 ~는 안한다라는 후회지요. 그런데 시인은 ‘~해도 좋을 게다라고 표현하는군요. 과거를 후회하는 게 아니라 나이 든 현재와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마치 순리인 양 말하는군요. 이 두 가지 진술 사이에 무슨 대단한 다른 뜻이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과거를 긍정하면서도 현재를 성찰하는 깨달음 덕분에 그 차이는 정말 오묘하고 엄청난 것이 됩니다. 그 중심에 이 시의 압권이 되는 단어인 현재의 나이 마흔아홉이 있습니다. 사실 2연 전체를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십대든 이십대든 육십대든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그 나이대에서 이해하는 건 머리로 해석하거나 과거를 회상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지금은 마흔아홉을 지나가버린 이 시를 쓴 당사자(시인)조차 그럴지도 모릅니다.

 

몸으로 이해하고 절절하게 체감하는 것은 시 안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의 나이 마흔아홉뿐입니다. 지천명(知天命)을 코앞에 둔 마흔아홉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삶의 의미와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는 걸까요? 화자는 망을 짜는 거미의 마음을 엿보고, 세계(거미줄)를 뒤흔드는 그 흔들림의 배면에는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먹잇감(잠자리)의 움직임뿐만이 아니라 잇대 올 겨울을 앞둔 가을 거미의 외로움도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군요. 마흔아홉이 되어서야, 밤을 지새운 거미의 필사의 그물짜기를, 겨우, 간신히 나는 안다라고 하는군요. 이것은 먹고사는 일상을 치열하게 살아내지 않는 자는 발언조차 할 수 없는, 또 발언해서는 안될 나는 안다입니다.

 

이윽고 먹잇감의 숨이 잦아들고 죽어가는 동시에 슬슬 먹고살기 위한 의식을 시작하면서 일상은 이어집니다. 마흔아홉의 사내는 범상한 듯 치열한 거미의 일상의 영역을 향해 절이라도 올리는 것처럼 겸손하게 허리를 굽혀피해서 가는군요. 그리고 사람의 마을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걷습니다. 두번째 압권이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거미의 일상에서 사람의 일상으로 전환되는 마지막 행이지요. ‘’ ‘해결 안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들어갔다이렇게 끊어서 속으로 음미하며 읽어보세요. 그 감동은 증폭되고 증폭됩니다.

- 인용출처 : 창비블로그(https://goo.gl/gHox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