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njiduk Gazebo
관음보살(觀音菩薩)과 정병(淨甁) 본문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 (靑銅 銀入絲 蒲柳水禽文 淨甁), 고려시대, 국보 제92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정병(淨甁)은 원래 인도에서 승려들이 마실 물을 담던 휴대용 수행 도구였다. 그런데 5세기 초 관음보살이 중생에게서 받은 버드나무 가지와 맑은 물로 그들의 병을 치료해 주었다는 <청관세음경(請觀世音經)>의 내용이 중국에 알려지면서 부처나 보살에게 깨끗한 물을 담아 바치는 불교 의식구가 되었다. 맑은 물과 버들가지로 중생의 아픈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관음보살의 자비의 상징물이 된 것이다.
특히 정병과 버드나무가지를 든 관음보살을 그린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는 고려불화의 정수라 불린다.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는 글자 그대로 달이 비친 바다 가운데 금강보석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을 그린 불화이다. 고려 불화는 현재 전세계에 160점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한국에 소장된 작품은 19점으로 추정된다. 특히 수월관음도는 전 세계적으로 약 40점 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 중 문화재청에 등록된 우리나라 소재 작품은 4개뿐 이다.
수월관음도
보타낙가산을 배경으로 관세음보살이 자애롭게 앉아 사유적인 모습으로 53선지식을 친견하여 법을 구하고자 하는 선재동자를 맞이하여 법을 전해주고 있는 변상도입니다.
왼쪽에는 대나무 두 가지가 있고, 보살은 결가부좌하여 대각선으로 선재동자를 내려보고 있으며 왼쪽 정병에는 버드나무가지가 꽂혀 있고, 오른손에는 연꽃 한줄기를 켜고 있습니다.
고려 수월관음도의 관음보살은 투명한 천의(天衣)를 걸치고 푸른 물로 둘러싸인 기암괴석의 대좌 위에 한쪽 발을 늘어뜨린 반가부좌의 자세로 비스듬히 앉아 있다. 발치에는 선재동자가 합장을 하며 깨달음을 구하고 있다. 관음보살을 압도적인 크기로 배치하고 선재동자를 하단에 조그맣게 배치해 두 주인공 사이의 심오한 공간감을 보여주는 게 특징이다.
<서구방의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1323년고려불화, 165.5cm×101.5cm, 일본 개인소장>
유홍준 교수는 “고려불화의 압권은 붉은 법의 위에 걸친 흰 사라(면주실로 거칠게 짠 비단)의 표현에 있다. 그 기법이 얼마나 정교한지 속살까지 다 비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 정병이 전해진 것은 7세기 말 경이지만 몇몇을 제외하면 현존하는 대부분의 정병들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현존하는 인도의 정병은 첨대가 짧은 꼭지처럼 되어 있어 우리나라의 정병과는 모양이 조금 다르다. 북송의 서긍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고려의 정병은 "물을 담는 주구(注口)와 물을 따르는 첨대(尖臺)로 이뤄진 독특한 형태의 물병"이었다고 한다.
수행 생활을 하는 승려들은 병과 발, 석장, 향로, 녹수낭 등 18가지의 물품을 항상 지녀야 했는데, 녹수낭은 물을 거를 때 사용하는 것으로 명주나 무명 천으로 이 천을 정병의 주구에 씌워 깨끗한 물을 얻었다고 한다.
정병은 고려시대에 주로 금속기와 도자기로 만들어졌다. 대개 금속제 정병에는 문양이 없지만, '포류수금문(蒲柳水禽文)'이라는 독특한 문양을 새긴 작품들이 전하고 있다. 그야말로 창포와 버들이 있는 물가에 물새들이 노니는 서정적인 풍경을 담은 문양이다.
고려에서는 귀족과 관리들뿐 아니라 사찰과 도관, 민가에서도 물을 담을 때 정병을 사용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