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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빨래터 사진

곤지둑 2015. 11. 30. 17:04

조선이 부산을 개항한 1876년 이후 유럽인들은 한국인의 의생활((衣生活)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당시 프랑스의 르몽드(le monde) 신문에 실린 내용이다. “한국인들은 결코 얼굴이나 손을 씻지 않는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같이 깨끗하지 못한 민족이 대부분 흰옷을 입고 있다는 점이다. 흰옷은 잘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게으른 사람이 입기 어려운 옷이다. 여성들은 흰옷을 깨끗이 관리하려고 쉼 없이 빨래해야 했다. 여성들이 흰옷을 빨고 헹구고 문지르고 풀 먹이는데 나날을 보내는 동안 남자들은 따스한 햇볕 아래서 행복하게 담배를 피운다”고 적고 있다. 당시 조선의 여성들이 고된 농사일은 물론이고 육아, 음식장만, 직조와 함께 세탁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지 알 수 있다.

오래된 우리나라 빨래터 풍경으로 추정할 수 있는 인화사진 원본을 구입하였다.

바닥까지 훤히 드러난 맑은 하천 주위에 여인들이 모여 편편한 돌 위에 놓인 빨랫감을 주무르거나 방망이를 두들겨 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머니의 등 뒤에 업혀 칭얼되는 갓난 아이, 하천에 몸을 담그고 물놀이를 즐기는 서 너살 정도의 어린아이, 벌거벗은 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빨랫감을 주물럭거리는 대 여섯 나이의 계집아이, 검정 고무신에 긴 머리를 묶고 있는 처녀도 보이고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있는 중년의 여인도 보인다. 빨래터 주위에는 작은 굴뚝이 있어, 장작불로 삶은 무명천을 하천 주위에 펼쳐놓고 건조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졸졸졸 흐르는 하천물 소리, 뚝딱뚝딱 두들기는 방망이 소리와 함께 조잘조잘 늘어놓는 여인의 넋두리가 사진 곳곳에서 들려온다.

고된 시집살이에 잔소리 많은 시어머니 험담, 눈치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멍텅구리 서방님 흉에 애비 닮아서 말은 지지리도 안 듣는 자식새끼 한탄 등 마음에 쌓인 한 많은 이야기들을 훌훌 털고나면 개울가에 씻어낸 뽀얀 빨래처럼 속이 후련해 졌으리라. 

결국 인종(忍從)의 설움을 빨래와 함께 씻어내며, 한(恨)과 낭만(浪漫)이 함께 했던 여인들의 해방구(解放口)가 빨래터였는지 모른다. 










<김홍도 풍속화첩 중 빨래터>

<신윤복 - 표모봉욕(漂母逢辱)  '빨래하는 여인이 욕을 보다'>

<신윤복 계변가화(溪邊佳話)>


<프랑스 국립 기메동양박물관 소장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의 풍속화 모사복원품>

<03:54>부터 시청(김홍도와 신윤복의 빨래터 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