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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소설 태백산맥 문학기행 - 김범우의 집 & 철다리 & 소화교(부용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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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소설 태백산맥 문학기행 - 김범우의 집 & 철다리 & 소화교(부용교)

곤지둑 2016. 2. 9. 11:35


소설 속에서 빨갱이로 몰려 순천경찰서에 갇힌 김범우를 구하기 위해 김사용 영감이 문중회의를 열었던 곳이다. 김범우의 집 대문은 문간채 형식으로 지어진 대문으로 바깥에 담을 두르고 있다. 



원래 대지주였던 김씨집안 소유의 집이다. 안채의 대문 옆에 딸린 아랫채에서 초등학생이었던 작가가 친구인 이집 막내 아들과 자주 놀았다는 것은 작은 흥미를 일으킨다. 소설에서는 품격있고 양심을 갖춘 김사용의 집으로 그려지고 있다.
"과분한 땅이라고? 이 사람아, 요 정도가 내가 지닌 땅 중에서 젤로 나쁜 것이네. 눈 붉은 우리 선대의 유산이 어련허겼는가. 맘 쓰지 말고 밭 일구도록 허게...(태백산맥 1권 141쪽)".

민가나 격이 낮은 건물에서는 네모기둥을 쓴다고 알고 있는데​ 궁궐이나 관청 등 지체높은 집을 건축할때 사용된 둥근기둥의 안채가 인상적이다.



소설에서 염상구를 가장 인상적으로 부각시켜 주는 곳이 이 철다리다. “세상이 다 알게 친일을 했던 자들이 무슨 명목을 붙여서든지 애국의 탈을 쓰려고 급급한 판에 염상구 정도의 이력 변조는 아주 양심적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태백산맥’ 1권 189쪽) 철교 아래 선창에서 물건을 훔쳐내다 들켜 일본 선원을 찔러 죽이고 도망쳤다가 해방과 함께 벌교로 돌아와선 용감하게 일본놈을 처치한 독립투사로 변신한 염상구.


"철교의 중앙에 똑같이 서서 누가 더 기차가 가까이 올 때까지 버티다가 아래 바닷물로 뛰어내릴 수 있는지를 겨루자는 것'이었다. 염상구가 이겼고, 결투에서 진 땅벌은 그날 밤 "옛 부하 몇 명의 전송 아닌 감시 속에서 고리짝만한 크기의 가방 하나를 들고 광주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1권 244쪽)


소설 속 염상구가 벌교 바닥을 접수하기 위해 깡패 왕초인 땅벌과 담력 대결을 벌인 곳이다. 철교의 중앙에 서서 기차가 가까이 올 때까지 오래 버티다가 누가 먼저 바다에 뛰어드는지 내기를 해 지는 쪽이 벌교를 떠나는 조건이었다. 결국 염상구는 땅벌을 쫓아내고 벌교를 주름잡게 된다.


소화 6년(1931년)에 완공되었다고 해서 소화다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정식 명칭은 부용교. 
그러니 이리저리 생각해도 무당 소화(素花; 흰 꽃)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지만 여순사건때 이리저리 학살당한 사람들의 시체를 소화다리 밑으로 던졌다고 한다.
'소화다리 아래 갯물에고 갯바닥에고 시체가 질펀허니 널렸는디, 아이고메 인자 징혀서 더 못 보겄구만이라….
사람쥑이는거 날이 날마동 보자니께 환장 허겄구만요.' (태백산맥 1권 66쪽)


지금은 콘크리트 난간이 있지만 소화 6년에 다리를 세울 때는 쇠난간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제가 쇠붙이 공출을 한다며 쇠난간까지 뜯어갔고, 여순사건 당시에도 그 난간은 복구되지 않았다. 그렇게 일제가 뜯어가버린 난간 때문에 나중에 소화다리는 학살장으로 악용된다. 난간이 없는 다리에 처형할 사람을 세워두고 총을 쏘면 시체들이 갯벌에 그대로 떨어지게 되니까 시체 처리가 손쉬웠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