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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호랑이 이야기(5) - 민간 신앙과 호랑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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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호랑이 이야기(5) - 민간 신앙과 호랑이

곤지둑 2016. 6. 3. 20:33

우리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에 '정월이면 대문의 한쪽엔 용그림, 다른 한쪽엔 호랑이그림을 붙인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용호문배도(龍虎門排圖)라 한다호랑이는 호축삼재 (虎逐三災)라 해서 '호랑이가 삼재를 쫒는 벽사(辟邪)'의 기능을 하고, 용은 용수오복(龍輸五福)이라 하여 '용은 오복을 가져오는 길상(吉祥)'의 기능을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호랑이가 잡귀를 쫓고 용이 상서로움을 불러들여 가정의 행복을 지켜주니, 가정의 평안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지킴이인 것이다. 그림이 여의치 못하면, 대신 대문의 한 짝에 용(), 다른 한 짝에 호()자를 글씨로 써서 붙이기도 한다. 민속촌에 가면 이러한 장면을 볼 수 있다

<조선 후기. 80x144cm. 종이에 채색. 에밀레박물관 소장초등 4학년 미술 > . 상상의 세계 > 용호도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호랑이를 하나의 평범한 짐승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인격화 내지 신격화하여 존숭과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왔고, 한편으로는 공포의 대상 그리고 보은의 영물로 받들어 왔기 때문에 호랑이, 범 외에 수 많은 이칭을 사용해 왔다

산령(山靈), 산군(山君), 산신(山神), 산군자(山君子), 영수(靈獸), 대충(大蟲), 산정(山精) 그리고 산중호걸(山中豪傑), 백수지왕(百獸之王)등이 그것인데 이들 명칭에 나타난 우리 민족의 호랑이에 대한 관념은 신성하고 영험스러우며 존숭과 숭앙에 차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호랑이에 대한 존숭의 관념은 우리 재래 민간신앙 중 산신당 신앙에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절간의 산신각이나 무당집에 있는 산신도(山神圖)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어, 깊은 산 그윽한 골짜기를 배경으로 소나무 아래 기암괴석에 앉은 도인 모습의 산신을 그리는데, 그 옆에는 반드시 호랑이를 배치한다이런 점에서 호랑이는 산신의 시자(侍者)라고 할 수 있지만, 때로는 호랑이 자체가 산신과 동격이 되어 추앙을 받기도 하고, 마을로 내려와서는 동제당에서 그 주신(主神)으로 대접받기도 한다.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박물학자 이규경(李圭景.1788~?)은 그의 방대한 백과전서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이르기를 "호랑이를 산군(山君. 산신)이라 해서 무당이 진산(鎭山)에서 도당제를 올린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산신도, 19세기, 종이에 채색, 101.7cm*70.8cm, 도쿄 일본민예관>


하동 금정사 산신탱(河東 金頂寺 山神幀). 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조선시대의 산신도이다. 2010107일 경상남도의 유형문화재 제506호로 지정되었다.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그리고 신부가 신랑 집으로 갈 때에는 신부의 가마에 흰 천으로 휘장을 두르고가마 지붕에는 잡귀와 액을 물리치기 위한 벽사(壁邪)의 의미로 호랑이 가죽이나 호랑이 무늬의 담요를 얹었다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호피도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호랑이 그림과 판목 탄본, 84.0×47.0cm, 원주 고판화박물관>

강원도 치악산 명주사(明珠寺) 고판화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중국 용호도(龍虎圖) 판목(版木,인쇄를 위하여 그림이나 글씨를 새긴 나무 또는 재료로 쓰는 목판) 중 호랑이 부적판목 상단의 가운데에는 칙령(勅令)이라고 씌여있어, 판목이 부적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판목(版木) 상단의 가운데에는 신이 내린 명령이란 뜻의 칙령(勅令)이라는 문구가 보이는데, 이는 판목이 부적(符籍)으로 쓰였던 것을 알려준다. 상단에 쓰인 제문을 보면 산과 바다를 얼어붙게 하고 온갖 짐승들이 눈치를 보며 모습을 감추게 할 만큼 강렬한 의용으로 집안에 들어오는 잡귀를 물리친다고 했다

오동나무를 배경으로 삼고 나뭇가지에 까치가 깃들어 있고 원숭이가 호랑이를 놀리고 있다. 호랑이의 이마에는 임금 왕()자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백수의 왕, 즉 모든 동물의 왕으로서 권위를 나타낸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까치와 원숭이는 모두 길상을 상징한다. 까치는 기쁜 소식을 가져온다는 의미이고, 오동나무 위에 까치가 앉아 있으면 기쁨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이다. 까치는 기쁨()이고 오동나무의 동()자는 동()과 음이 같기 때문에 서로 의미를 교환해 쓰는 우의법(寓意法)에 의해 동희(同喜), 즉 기븜을 함께 나눈다는 뜻이 된다.

원숭이는 한문 표기인 후()자가 벼슬을 나타내는 후()자와 발음이 비슷해서 출세를 상징한다. 바닥에는 잡보문(雜寶文)이 흩어져 있는데, 이는 길상을 의미한다. 액막이를 상징하는 호랑이가 중심을 이루지만, 좋은 소식, 출세 등을 상징하는 길상의 도상이 가득한 부적(符籍)이다.

[인용문헌] 정병모, 무명화가들의 반란 민화, 다할미디어(2011), pp. 253-256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