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njiduk Gazebo
정병 본문
정병(淨甁)은 원래 인도에서 승려들이 마실 물을 담던 휴대용 수행 도구였다. 그런데 5세기 초 관음보살이 중생에게서 받은 버드나무 가지와 맑은 물로 그들의 병을 치료해 주었다는 <청관세음경(請觀世音經)>의 내용이 중국에 알려지면서 부처나 보살에게 깨끗한 물을 담아 바치는 불교 의식구가 되었다. 맑은 물과 버들가지로 중생의 아픈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관음보살의 자비의 상징물이 된 것이다. 이후 정병과 버드나무가지를 든 '양류관음보살상'이라는 불교조각도 나타난다.
우리나라에 정병이 전해진 것은 7세기 말 경이지만 몇몇을 제외하면 현존하는 대부분의 정병들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현존하는 인도의 정병은 첨대가 짧은 꼭지처럼 되어 있어 우리나라의 정병과는 모양이 조금 다르다. 북송의 서긍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고려의 정병은 "물을 담는 주구(注口)와 물을 따르는 첨대(尖臺)로 이뤄진 독특한 형태의 물병"이었다고 한다.
정병(淨甁)이란 원래 인도에서 승려가 여행을 할 때 밥그릇이나 의복과 함께 메고 다니던 물병에서 유래한 것으로, 범어로는 쿤디카(kuṇḍikā, 군지(軍持)·군치가(軍雉迦))라고 하였다. 이처럼 승려가 갖고 다니는 필수품의 하나로 쓰이던 물병이 차츰 부처님 앞에 깨끗한 물을 바치는 공양구(供養具)로서 용도의 폭을 넓혀가게 된 것이다. 불(佛)·보살(菩薩)이 지니는 물병은 구제자를 나타내는 상징이자 자비심을 표현하는 지물(持物) 구실을 하기도 하였다. 병에 들어 있는 감로수(甘露水)를 통해 모든 중생들의 목마름과 고통을 덜어준다고 하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정병은 바로 이러한 자비의 상징물이기도 했다.
정병은 고려시대에 주로 금속기와 도자기로 만들어졌다. 대개 금속제 정병에는 문양이 없지만, '포류수금문(蒲柳水禽文)'이라는 독특한 문양을 새긴 작품들이 전하고 있다. 그야말로 창포와 버들이 있는 물가에 물새들이 노니는 서정적인 풍경을 담은 문양이다.
고려에서는 귀족과 관리들뿐 아니라 사찰과 도관, 민가에서도 물을 담을 때 정병을 사용했다고 한다.
고려시대 정병은 계란형의 몸체와 매끈하게 빠진 긴 목 위로 뚜껑 형태의 둥근 테[환륜(丸輪)]가 놓이고, 그 위로 다시 대롱처럼 긴 첨대(尖帶)가 솟아 있으며 몸체의 한쪽에는 중간을 잘룩하게 좁힌 비녀형의 부리(귀때)가 돌출된 모습이 전형적이다. 첨대 부분은 물을 넣는 주입구(注入口)이며 부리 부분이 물을 따르도록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