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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흔적, 붓

곤지둑 2016. 5. 15. 12:44

정신의 흔적,



철필이나 볼펜에 힘을 주어 쓰면 어떻게 될 것인가. 종이는 금세 찢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붓은 아무리 힘을 주어 써도 종이가 찢어지는 법이 없다. 붓은 부드럽기 때문에 모든 힘을 받아 전달한다. 섬세하고 오묘한 정신의 리듬까지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쇠로 된 펜이 정신의 부도체라고 한다면 붓은 그것을 전류처럼 흐르게 하는 양도체라고 할 수 있다. 붓글씨는 땅을 딛고 있는 발끝에서, 말하자면 땅의 힘으로부터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는 추사 김정희의 서화론(書畵論)’대로, 쓴다는 것은 온 몸의 힘을 받은 흔적인 셈이다.



일본 사람들이 날카로운 칼을 만들어 쓰기가 아니라 베기의 문화를 만들고 있을 때 한국인들은 최고로 부드러운 붓을 만들어 쓰기의 문화(선비문화)를 만들어 갔다.

[인용 출처] 이어령, 우리문화박물지』, 디자인하우스(2007), pp. 132-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