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njiduk Gazebo
소설 첫 장면에 나오는 현부자네 집은 조직의 밀명을 받은 정하섭이 활동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새끼무당 소화의 집을 찾아가고, 이곳을 은신처로 사용하게 되면서 현부자네 집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펼쳐진다."그 자리는 더 이를데 없는 명당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풍수를 전혀 모르는 눈으로 보더라도 그 땅은 참으로 희한하게 생긴 터였다...." 2층 누마루가 있는 문간채. 가운데 누마루가 있는 출입문이 있고, 양쪽에 방이 2칸씩 있다. 전통적인 한옥의 문간채와는 다른 구조를 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이 누각은 현부자가 올라앉아 기생들과 함께 풍류를 즐기면서 자기 소유의 중도들판을 내려다보던 곳으로 묘사되어 있다. 누각에 올라 자기 소유의 들판을 내려다보는 일은 지주의 몫이다. "저것이 다 내 땅이여·····..
소설 속에서 빨갱이로 몰려 순천경찰서에 갇힌 김범우를 구하기 위해 김사용 영감이 문중회의를 열었던 곳이다. 김범우의 집 대문은 문간채 형식으로 지어진 대문으로 바깥에 담을 두르고 있다. 원래 대지주였던 김씨집안 소유의 집이다. 안채의 대문 옆에 딸린 아랫채에서 초등학생이었던 작가가 친구인 이집 막내 아들과 자주 놀았다는 것은 작은 흥미를 일으킨다. 소설에서는 품격있고 양심을 갖춘 김사용의 집으로 그려지고 있다. "과분한 땅이라고? 이 사람아, 요 정도가 내가 지닌 땅 중에서 젤로 나쁜 것이네. 눈 붉은 우리 선대의 유산이 어련허겼는가. 맘 쓰지 말고 밭 일구도록 허게...(태백산맥 1권 141쪽)".민가나 격이 낮은 건물에서는 네모기둥을 쓴다고 알고 있는데 궁궐이나 관청 등 지체높은 집을 건축할때 사용..
'홍교(횡갯다리)'는 현존하는 아치형 석교 가운데 가장 크고 아름다워 보물 제304호로 지정된 곳이다. 원래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뗏목다리(벌교)가 있었는데, 1728년(영조)에 선암사의 초안선사가 홍교를 건립하였다. “김범우는 홍교를 건너다가 중간쯤에서 멈춰섰다. (…) 그러니까 낙안벌을 보듬듯이 하고 있는 징광산이나 금산은 태백산맥이란 거대한 나무의 맨 끝가지에 붙어있는 하나씩의 잎사귀인 셈이었다.” (‘태백산맥’ 1권 257쪽) 이무기돌. 이무기돌은 홍예교(虹霓橋)의 최상단 안쪽 중앙에 설치하는 것으로, 상상 속의 동물인 서수(瑞獸)머리 모양으로 조각한 석물(石物)이다. 이무기는 천년을 묵어야 용(龍)이 된다는 전설의 동물로, 천년의 오랜 시간을 기다려도 용이 되어 승천하지 못하니 그 서기가 ..
반란군 토벌대장 임만수와 대원들이 숙소로 사용하던 남도여관의 실제 모델은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구 보성여관’(등록문화재 제132호)이다. 문화재청 산하 특수법인인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원형 그대로 복원해 찻집과 숙박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보성여관은 현부자집 소유로 벌교에서 하나뿐인 여관이었다. “토벌대장 임만수가 벌교에 열흘 정도 머무는 동안 벌교의 지주들은 말할 것도 없고 보성의 지주들까지 남도여관의 뒷문을 드나들었다”는 등 빨치산 토벌대원들의 숙소로 등장하는 보성여관은, 『태백산맥』의 무대 가운데 정식으로 복원된 최초의 사례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인도에서 온 연기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화엄경의 ‘화엄’ 두 글자를 따서 화엄사라 명명되었으며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각황전과 빛나는 문화유산을 간직한 천 년 고찰이다. 주요 문화재로는 국보 제12호인 석등(石燈), 국보 제35호인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67호인 각황전이 있으며, 보물 제132호인 동오층석탑(東五層石塔), 보물 제133호인 서오층석탑, 보물 제300호인 원통전전 사자탑(圓通殿前獅子塔), 보물 제299호인 대웅전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구층암(九層庵)·금정암(金井庵)·지장암(地藏庵)이 있다. 화엄사는 보제루에도 특별함이 숨어 있다. 승려나 신도들의 집회용인 2층 누각 건물로 대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