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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njiduk Gazebo
'홍교(횡갯다리)'는 현존하는 아치형 석교 가운데 가장 크고 아름다워 보물 제304호로 지정된 곳이다. 원래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뗏목다리(벌교)가 있었는데, 1728년(영조)에 선암사의 초안선사가 홍교를 건립하였다. “김범우는 홍교를 건너다가 중간쯤에서 멈춰섰다. (…) 그러니까 낙안벌을 보듬듯이 하고 있는 징광산이나 금산은 태백산맥이란 거대한 나무의 맨 끝가지에 붙어있는 하나씩의 잎사귀인 셈이었다.” (‘태백산맥’ 1권 257쪽) 이무기돌. 이무기돌은 홍예교(虹霓橋)의 최상단 안쪽 중앙에 설치하는 것으로, 상상 속의 동물인 서수(瑞獸)머리 모양으로 조각한 석물(石物)이다. 이무기는 천년을 묵어야 용(龍)이 된다는 전설의 동물로, 천년의 오랜 시간을 기다려도 용이 되어 승천하지 못하니 그 서기가 ..
반란군 토벌대장 임만수와 대원들이 숙소로 사용하던 남도여관의 실제 모델은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구 보성여관’(등록문화재 제132호)이다. 문화재청 산하 특수법인인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원형 그대로 복원해 찻집과 숙박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보성여관은 현부자집 소유로 벌교에서 하나뿐인 여관이었다. “토벌대장 임만수가 벌교에 열흘 정도 머무는 동안 벌교의 지주들은 말할 것도 없고 보성의 지주들까지 남도여관의 뒷문을 드나들었다”는 등 빨치산 토벌대원들의 숙소로 등장하는 보성여관은, 『태백산맥』의 무대 가운데 정식으로 복원된 최초의 사례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인도에서 온 연기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화엄경의 ‘화엄’ 두 글자를 따서 화엄사라 명명되었으며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각황전과 빛나는 문화유산을 간직한 천 년 고찰이다. 주요 문화재로는 국보 제12호인 석등(石燈), 국보 제35호인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67호인 각황전이 있으며, 보물 제132호인 동오층석탑(東五層石塔), 보물 제133호인 서오층석탑, 보물 제300호인 원통전전 사자탑(圓通殿前獅子塔), 보물 제299호인 대웅전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구층암(九層庵)·금정암(金井庵)·지장암(地藏庵)이 있다. 화엄사는 보제루에도 특별함이 숨어 있다. 승려나 신도들의 집회용인 2층 누각 건물로 대개..
중국 당대에 형성된 선종은 근원적인 본래심(本來心) 즉 불성(佛性)을 자각하고 그 지혜와 덕성을 일상 속에서 완성하고 전개하였다. 따라서 부처님의 가장 본질적인 가르침이 선(禪)수행이라고 여겼기에 이 전승의 출발은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시작한다. 첫번째 조사는 가섭 존자이며 두 번째는 아난 존자이다. 이후 27조 반야다라 존자를 잇는 28조가 바로 달마(達磨) 대사이다.남인도 향지국의 태자였던 달마 대사는 인도 28조이면서 중국 초조(初祖)가 된다. 그로부터 2조 혜가(慧可) 대사, 3조 승찬(僧璨) 대사, 4조 도신(道信) 대사, 5조 홍인(弘忍) 대사에 이르렀고, 홍인에게서 6조인 혜능(慧能) 대사가 나왔다.그래서 서천(西天) 28조와 동토(東土) 6조를 합쳐 33조사를 헤아리고, 이를 지혜의 등불을..
어느 해, 동짓달 초아흐렛날 밤새 큰 눈이 내렸다. 신광은 달마 대사가 면벽하고 있는 굴 밖에 서서 꿈쩍도 않고 밤을 지새웠다. 새벽이 되자 눈이 무릎이 넘도록 쌓였다.“네가 눈 속에서 그토록 오래 서 있으니, 무엇을 구하고자 함이냐?”“바라건대 스님께서 감로의 문을 여시어 어리석은 중생을 제도해주소서.”“부처님의 위없는 도는 오랜 겁 동안을 부지런히 정진하며 행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하고 참기 어려운 일을 능히 참아야 얻을 수 있다. 그러하거늘 너는 아주 작은 공덕과 하잘것없는 지혜와 경솔하고 교만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서 참다운 법을 얻고자 하는가? 모두 헛수고일 뿐이니라.”달마 대사의 이 얘기를 듣던 신광은 홀연히 칼을 뽑아 자신의 왼쪽 팔을 잘랐다. 그러자 때 아닌 파초가 피어나 잘린 팔을 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