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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njiduk Gazebo
목포 갓바위(천연기념물 제500호)는 삿갓을 쓴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의 바위인데, 그 크기는 큰 갓바위가 8m, 작은 갓바위가 6m 정도이다. 갓바위의 암석은 화산재가 쌓여 형성된 응회암인데, 화산재 입자가 눈에 보일 정도로 크고,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영산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어 풍화작용과 해식작용의 결과로 형성된 풍화혈(風化穴; tafoni)이다.인위적 요인이 전혀 작용하지 않은 자연 조각품으로 다른 지역 풍화혈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희귀성을 가지고 있다.한편 목포에는 단기 4288년(1955년) 무렵을 전후해 명명된 목포 팔경(八景)이 있다. 목포팔경 중 저녁노을에 물든 바닷가의 갓바위와 바위절벽으로 된 입암산에 반사되는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입암반조(笠岩返照)라 한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수탈의 상징이었던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 나주 영산포 출장소 문서고(현 사유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현 목포근대역사관 2관) 그리고 목포 영사관(현 목포근대역사관 1관)을 방문하였다. 동양척식주식회사(이후 동척)는 조선의 토지와 자원수탈을 목적으로 1908년에 설립한 특수 국책회사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전국에 9개의 동척 지점이 있었으나 현재 동척 건물의 원형이 보존된 것은 목포지점과 부산 지점뿐이다. 동척 목포 지점은 영산포에 있던 동척 출장소가 1920년 에 목포로 옮겨오면서 건축한 르네상스식 2층 건물로, 지금은 이 건물 내부를 단장하여 목포 근대역사관으로 운영하고 있다.일본은 1912년부터 1918년까지 토지 조사 사업으로 전국 토지의 40퍼센트를 차지하였다...
나주는 삼국시대 이전 마한의 중심지였고 1100년 전 왕건이 견훤과 금성산 전투를 벌였던 요충지였다. 옛 나주, 금성에 원정 온 왕건은 샘터에서 처자로부터 버들잎 띄운 물 한 바가지를 얻어먹고 이 처자와 연을 맺는다. 유명한 버들낭자 이야기이며, 버들낭자는 고려 2대 왕 혜종을 낳아 장화왕후가 된다.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에서 따왔다. 과거 나주는 오늘날 보다는 지리학적으로나 규모면에서 훨씬 더 크고 중요한 도시였다. 통일신라 때 금성이었던 지명이 903년 나주로 바뀌었고, 998년 고려 성종때는 지금의 광역시 격인 12개 목(牧) 중의 하나였다19세기 말 도(道)로 행정구역이 개편돼 광주가 도청소재지가 될 때까지 천년 동안 남도 제일고을 목(牧)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객사 정문인 망화루와 금성관 사이 중..
나주문바위문암(羅州文巖).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풍림리에 있는 바위로 높이가 6m, 폭이 5m이며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32호이다.남평문씨(南平文氏)의 시조 무성공(武成公) 문다성(文多省)이 바로 이곳에 탄강하였다는 설화가 조선 영조 21년(1731)에 쓰인 남평문씨 창간보 『신해보』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호남읍지』등의 문헌에 수록되어 있다. '전라도 남평군 동쪽에 장자못(長者池)이라는 큰 못이 있고, 그 못 가에 천 길이나 되는 높은 바위가 솟아 있었다. 하루는 당시의 군주(郡主)가 그 바위 아래에서 놀고 있는데, 바위 위에 갑자기 오색구름이 감돌면서 문득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은은하게 들려 왔다. 이상히 여긴 군주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보니, 돌 상자가 놓여 있고 그 속에 피부가 옥설(玉雪)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