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Favorite/옛숨결 (75)
Gonjiduk Gazebo
우리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에 '정월이면 대문의 한쪽엔 용그림, 다른 한쪽엔 호랑이그림을 붙인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용호문배도(龍虎門排圖)라 한다. 호랑이는 호축삼재 (虎逐三災)라 해서 '호랑이가 삼재를 쫒는 벽사(辟邪)'의 기능을 하고, 용은 용수오복(龍輸五福)이라 하여 '용은 오복을 가져오는 길상(吉祥)'의 기능을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호랑이가 잡귀를 쫓고 용이 상서로움을 불러들여 가정의 행복을 지켜주니, 가정의 평안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지킴이인 것이다. 그림이 여의치 못하면, 대신 대문의 한 짝에 용(龍)자, 다른 한 짝에 호(虎)자를 글씨로 써서 붙이기도 한다. 민속촌에 가면 이러한 장면을 볼 수 있다. 초등 4학년 미술 > Ⅲ. 상상의 세계 > 용호도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19세기에는 까치호랑이 그림에서 까치가 대부분 대립의 구도로 설정된다.왜 범과 까치가 이처럼 대립하는 것일까? 민화 까치호랑이는 벽사와 길상 이상의 또 다른 상징성을 갖는다. 악귀를 쫓는 벽사의 호랑이가 ‘바보 호랑이’로 전락하고, 새 소식을 전해주는 까치는 더욱 당당해진다. 이것은 원래 상징과 다른 그 무엇이 개재되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풍자이다. 호랑이는 권력을 빙자하여 폭정을 자행하는 권리를 상징하고, 까치는 힘없는 서민을 대표한다. 까치가 호랑이에게 대드는 구성을 취함으로써 서민들의 신분에 대한 불만을 카타라시스적으로 해소하고자 한다. 실제 당시 서민들 사이에는 까치호랑이의 설화가 유행하였는데, 그 내용은 까치가 지혜로 힘센 호랑이를 골탕 먹임으로써 신분의 차이에서..
백자청화호작문호(白磁靑畵虎鵲文壺).소나무 위에 까치가 지저귀고 그 아래 호랑이가 앉은 모습이 그려져 있다. 민화에서 즐겨 그려진 이 소재를 백자 위에 코발트 안료를 이용해 푸르게 그려 넣었다. 조선 초·중기에는 백자에 용(龍), 학(鶴), 매화, 대나무, 연꽃 등 우상, 선비정신, 절개를 상징하는 그림을 주로 그려 넣은데 반해 이 청화백자는 백성들에 친근한 민화(民畵)를 담았다.국외소재문화재재단측에 따르면 “18세기 후반의 청화백자에 이처럼 민화풍의 그림이 그려지는 경우가 많이 발견된다. 하지만 이 항아리처럼 까치호랑이를 그린 경우는 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과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소장품 그리고 일본 와세다대학 아이즈야이치기념박물관 소장품 정도만 알려져 있다”고 한다.일본 와세다대학 아이즈야이치기념박물관..
소나무가 있고, 가지 위에는 까치가 앉아 있다. 그리고 그 소나무 아래에는 표범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민화 속에는 표범으로 그려진 것도 있고, 호랑이로 그려진 것도 있다. 때로는 등은 호랑이 무늬이고 목과 가슴 부분에는 표범의 반점이 서로 섞여 있는 경우도 있다.바로 ‘까치호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그림으로 호작도(虎鵲圖), 표작도(豹鵲圖) 또는 보희도(報喜圖) 라고 한다. 작가미상, 종이에 채색, 72cm×59.4cm, 일본 개인 소장 하지만 이 그림을 단순히 ‘보는 그림’이 아니라 그림 속에 중의(寓意)가 담겨져 있는 ‘읽는 그림’으로 해석하면, 그림에서 호랑이는 표범으로 그려야 한다. 소나무는 새해 첫달인 ‘정월(正月)’을 뜻한다. 중국어로 표범 ‘표(豹)’ 자는 소식을 알린다는..
버선은 족의(足衣)라고도 하며 한자어로는 ‘말(襪)’이라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신고 있는 ‘양말(洋襪)’은 말 그대로 ‘서양 버선’이라는 뜻이다. "버선본을 장독에 붙이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잡귀를 쫓고 장맛이 변하지 않게 위함이었다. 버선본은 흰색인데 이 흰색은 낮에는 햇빛을 반사한다. 그런데 날파리나 기어다니는 해충은 반사빛을 싫어한다."[인용 출처] 김종태, 『옛 것에 대한 그리움』, 서울:휘닉스(2010년), pp.69-71 "버선 모양은 부정(不淨)한 곳에 출입을 자주하는 남자들이 신성한 여인네 공간에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이여 경고의 표시이기도 하며 벽사(辟邪)의 의미로 벌레를 발로 죽이는 모습의 발을 본떠서 해충의 접근을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 곧 액(厄)막이 역할을 버선에 의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