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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njiduk Gazebo
옹기는 만드는 사람과 자연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종합된 형태는 지역적인 기후환경에 따라서 각 지역의 식문화와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발달되었다. 전통제작 기법으로 완성된 옹기는 해안, 산악, 평야 지대로 나뉘어 그 형태가 다르며 행정구역으로 설정된 지방별로 그 형태를 달리하고 있다. 1. 서울·경기도 지역 중부지방의 옹기형태는 큰 키에 비해 배의 폭이 좁고 날렵한 항아리 형태를 기본으로 하여 입과 밑지름의 크기가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서울, 인천, 경기도 지역의 옹기 형태는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은 특징을 기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남부지역의 옹기형태와 비교해 볼 때 비교적 배가 덜 부르고 배지름에 비해 전과 굽이 큰 편이다. 이처럼 배 지름에 비해 입이 넓은 이유는 태양의 직..
양념단지는 수분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 양념을 주로 담아서 사용하거나 보관하는 용기이다.양념단지는 그냥 낱개로도 사용하나 2~6개 정도씩 붙여서 일단지·이단지·삼단지·사단지·오단지·육단지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때 단지마다 각기 꼭지가 달린 뚜껑을 덮게 만들었으며, 주로 소금·후추·깨소금·설탕·고춧가루 등을 담아 조리대 옆에 놓고 사용하였다. 사단지의 경우 단지와 단지는 짝을 지어 평행연결고리로 이어지고 흙가래로 반원형의 손잡이를 붙인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사진의 사단지에는 손잡이에 군데군데 볼록한 단추모양의 돌출부위를 붙여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제작하였다.한편, 오단지와 육단지처럼 단지수가 많은 것을 사용하는 집일수록 부잣집이었다는 말도 전해진다.특이한 것으로 4개의 단지를 사각으로 서로 평행 연결하..
"한 방울이라도 통 속에!” 1960년에서 1970년대 공중화장실마다 붙어 있던 안내문이다. 학교, 예비군 훈련장, 버스터미널 등의 남자화장실에는 이런 안내문과 함께 흰색 플라스틱 통이 놓여 있었다. 마땅히 수출할 것이 없었던 우리나라에서는 수집한 오줌을 모아 화학처리를 한 뒤 일본에 팔아 돈을 벌었다. 사람의 오줌 속에는 뇌졸중 치료제를 만드는데 주원료로 사용하는 우로키나아제라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수출품이 된 것이다. 이처럼 1960~70년대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목에에는 가발과 함께 소변이 상위에 올라 있었던 것이다. 1960년대 초 1인당 국민 소득이 아프리카의 가나와 똑같은 수준인 80달러에 불과했던 시절, 입에 풀질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마땅한 의약품이 없었던 시절..
이무기돌. 이무기돌은 홍예교(虹霓橋)의 최상단 안쪽 중앙에 설치하는 것으로, 상상 속의 동물인 서수(瑞獸)머리 모양으로 조각한 석물(石物)이다. 이무기는 천년을 묵어야 용(龍)이 된다는 전설의 동물로, 천년의 오랜 시간을 기다려도 용이 되어 승천하지 못하니 그 서기가 이만저만 한 것이 아닐 것이다. 장마철에 거칠 것 없이 불어난 물살이 수마(水魔)처럼 기세등등하게 홍예교를 삼킬듯 달려오다가, 홍예교 중앙에 몸을 숨기고 있는 이무기돌을 보면 깜짝 놀라 기세를 누그러뜨려 얌전히 다리를 지나갈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즉, 이무기돌은 수마로부터 다리의 안전과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악귀를 막아 주기를 염원하는 주술적인 의미의 석물(石物)인 것이다. 예전에는 이무기돌의 코 끝에 풍경을 매달아 은은한 방울 소리가 울..
홍(虹)과 예(霓)는 무지개라는 뜻으로 돌을 쌓아 무지개 모양으로 둥글게 쌓아 올린 다리를 홍예교라 또는 홍교라 한다.요즘 세대에게 아치(arch)라는 외래어로 익숙한 홍예에는 완벽에 가까운 견고함과 빼어난 아름다움이 있다.좌우에서 쐐기 형태로 다듬은 돌을 서로 면이 맞물리게 안으로 오므려 돌을 쌓아 올라가다가 맨 위 가운데에 마지막 돌, 즉 이맛돌(key stone)을 끼워 넣으면 스스로 의지하여 버티는 강한 구조물이 되는 것이다. 이마 부분의 받침돌들이 하부의 돌을 눌러 압축력을 강화하여 홍예교가 무너지는 것을 막아 내는 것이다. 그래서 건물이나 성벽이 무너져도 홍예는 건재한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홍예에서는 돌과 돌 사이에 모르타르(mortar)같은 접착제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