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njiduk Gazebo
[배인석_나는 거짓말하는 사람이 아니다_강주룡의 고무신_가변 설치_2009][사진출처: 국가보훈처 대표 블로그, http://mpva.tistory.com/108] 어매는 없고 코고무신만 남아 있네. 한 쪽만 닳아 구멍이 보이는 작은 코고무신 한 켤레. 다리 절던 우리 어매 이걸 신고 살았지. 밥 지을 때도 신었고 밭 매러 갈 때도 신었지. 고추를 딸 때도 신었고 마늘을 심을 때도 신었지. 산나물 뜯으러 갈 때는 새끼로 묶어 신고 담배를 엮을 때는 잠시 벗어 두기도 했지. 한 쪽이 닳으면 바꿔 신었지. 맨발로 맨살로 세상에 나와 한 쪽만 늦게 닳았던 코고무신 우리 어매 절뚝절뚝 평생을 걸어도 양쪽을 똑같이 닳게 하였지. 마지막 한 켤레, 남은 한 쪽 마저 닳구지 못하고 병들어 어매는 죽고 말았지. 어매는..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부피의 계량 단위는 말(斗)·되(升)·홉(合)·작(勺)이다.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홉(合)은 원래 한 줌의 양을 뜻하는 것으로, 10홉을 한 되(升)라 하고 10되가 모아져 한 말(斗)이 된다. 한편 일반적인 계량 용기의 형태는 나무로 만든 정사각형 밑판의 사면(四面)에 수직으로 나무판을 세우고, 각각의 모서리는 사개물림하여 제작하였다. 하지만 사진의 ‘말(斗)’은 바닥이 넓고 위가 좁은 사다리꼴 모양으로 제작된 것이 특이하다.이렇게 사다리꼴 모양으로 ‘말(斗)’을 만들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한 면에 "이연기 댁李燕岐 宅"이라는 소유주의 이름이 한자로 음각되어 있다. 다른 면에는 수결을 음각하였다...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益山 王宮里 五層石塔 舍利莊嚴具)불타에 바치는 찬양이 사무치고 맺쳐서 이루어진 사리장치, 말하자면 석가모니의 분신을 모시기 위한 불도들의 온갖 정성이 응결된 거룩한 조형이 바로 사리장치가 지닌 아름다움이며 또 눈으로 느끼는 찬가와도 같은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1965년 섣달 전라북도 익산군 왕궁리에 있는 백제식 오층 석탑을 중수할 때에 탑 기단부 사리공에서 발견된 이 사리함과 사리병은 그때 함께 나온 순금제 금강경 책과 함께 세상을 놀래 준 우리 민족이 지닌 제1급 문화재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국보 제123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안에서 나온 유리제 사리병과 금제방합, 병높이 7.7cm, 합높이 9.8cm. 국립전주박물관 소장]사리병은 은으로 만든 사방좌 위..
공산성(公山城)은 백제 웅진시대(475년~538년)에 도읍지인 고마나루(熊津: 지금의 공주)를 방어하기 위해 축성된 산성이다.금강이 흐르는 해발 110m능선과 계곡을 따라 흙으로 쌓은 포곡형 산성(包谷形 山城: 계곡과 산정을 함께 두른 산성)으로, 자연에 젖어 이름모를 새소리와 숲내음을 맡으며 거닐수 있도록 둘레길이 형성되어 있다.화려한 백제문화를 꽃피우던 왕도(王都)였고, 조선시대 충청감영이 있어 호서지역 행정과 문화의 중심지였던 공주.그러나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인조가 파천해 머물기도 했고, 19세기 말 혼돈의 시대에는 가슴 쓰라린 우리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곳 역시 공주였다.동학농민전쟁때는 보국안민과 척양척왜의 기치를 내걸고 한양으로 향하던 동학농민군이 공주 우금티 전투에서 일본군과 관군..
덕숭산 덕숭총림 수덕사 여행의 백미는 당연 대웅전이다.수덕사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대웅전은 국보49호로 고려 충렬왕 34년인 1308년에 세워진 것이다. 안동 봉정사의 극락전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 이어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건물이다. 임진왜란 때에도 피해를 입지 않고 살아남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대웅전은 단정하게 정제된 장대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으로, 정면보다 오히려 측면이 더 아름답다. 건물의 가구(架構: 집을 구성하는 뼈대인 기둥과 보, 도리가 서로 짜 맞추어진 형상)는 2고주 9량가이며, 주심포 양식의 건축 구조는 조선시대 다포 양식의 사찰에 비해 간결하지만 위엄있는 조형미를 품고 있다.또, 측면 중앙의 기둥은 각주(..